잡다한 김겐찬 블로그

생각

언제나 그 자리에?

김겐찬 2020. 12. 2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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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포스트입니다"

 

"동영상을 볼 수 없음"

 

"삭제된 글입니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가끔 마주치게 되는 문구들. 지워진 컨텐츠가 내가 잘 몰랐거나 별 관심이 없었던 컨텐츠였더라면 그냥 지나쳐 가거나 조금 궁금해하고 말았을 순간이다. 

 

 마음에 들었던 글이나 만화, 그림, 음악 또는 영상을 기억에 남겨 뒀다가 나중에 다시 보고 싶어서 찾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도 자주 그런다. 처음엔 흐릿하게 남아있는 기억만으로 이리저리 단어를 바꿔가며 검색을 통해 찾아 봤었다. 그러나 기억에 의존하는 이 방법은 내가 재밌게 봤던 무언가를 다시 찾기엔 너무 불확실할 때가 많고 심지어 존재 자체를 잊어버릴 수도 있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나는 나중에 다시 보고싶어질만한 것이라면 url을 기록해 두거나 브라우저의 즐겨찾기나 북마크에 남겨두곤 했다. 그러기를 몇 년, 나는 카테고리별로 예쁘게 나누어 정리된 거대한 북마크 보관함을 가지게 되었다. 가끔은 배가 아프도록 웃으며, 가끔은 코끝이 시리게 눈시울을 적시며 북마크에 새겨진 URL과 그 안의 추억을 보듬고 또 매만졌다. 마치 오래된 책상 구석의 낡은 서랍을 열어보는 것과 같은 인터넷 세대의 감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삭제된 글입니다'를 만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만나고 또 만났다. 하나 둘 북마크 보관함에서 지워나가며, 어떤 것은 제목이라도 남기려 지우지 못하며 상실감을 느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줄로만 알았다. 그렇지 않았다. 내가 인터넷에서 만나 좋아했던 것들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먼지처럼 없어질 수 있는 것들이다. 창작자가 단순히 계정 정리를 하거나 더이상 인터넷에서 보이길 원치 않아 삭제할 수도 있고 창작물이 올라온 웹사이트의 이용자가 적거나 재정난으로 관리가 되지 않아 폐쇄될 수도 있다. 나는 어떻게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위태한 것들을 너무 마음에 든 나머지 추억이라는 이름표를 붙여주고 너무 예뻐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 무엇이라도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한다면 나에겐 소중한 것이다.

 

 내가 상실감을 느끼게 된 이유는 그 컨텐츠들이 남의 손에 있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북마크는 그 위치를 표시해주는 이정표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보존하는 기능이 거의 없다. 그렇다면 내 손에 직접 쥐고 있을 수 있다면 문제가 해결된다. 오프라인으로 저장하여 가지고 있으면 내가 잘 보관하기만 한다면 질릴 때까지, 또는 원한다면 영구히 그 컨텐츠를 소비할 수 있다. 문제는 창작자가 그걸 원치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상술했듯 원치 않기 때문에 나중에 지우는 경우까지 있다. 그 점에 걸려서 창작자가 직접 원하는대로 저장하거나 가져가도 된다고 명시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저장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도 내가 좋아했던 무언가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문구를 마주하면서 해결하지 못할 고민만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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